야담, 야설, 고전 211

말위에서 움직이는 송이버섯

말위에서 움직이는 송이버섯 (馬上松餌動) 어떤 선비가 말을 타고 가는데 여러 촌부(村婦)들이 빨래를 하고 있는 냇가에 다다랐을 때에 마침 스님 한 분과 만나게 되었다. 선비가 그 스님에게,"스님은 글을 아시오? 아신다면 시를 한 수 지어 보시지요" 하자 스님이,"소승은 무식하여 능하게 시를 지을 수 없습니다" 하고 겸손하게 말하는데 선비가 먼저 냇가의 빨래하는 여인네들을 바라보며, " (川邊紅蛤開) 시냇가에 홍합이 열렸으니" 하고 시를 읊고는 스님에게 다음 시귀를 재촉하였다. 그러자 스님이"선비님의 시는 육물(肉物)이라 산승(山僧)이 같은 육물로는 댓귀(對句)하지 못하겠습니다. 엎드려 비오니 채소 반찬으로라도 댓귀한다면 가히 용서하시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선비가"그것이 무엇이 어려운 일입니까?" 라고 ..

잘난 체 하는 기생

잘난 체 하는 기생 잘난 체 하는 기생이 있었다. 하루는 어수룩해 보이는 젊은 나그네가 그 기생을 찾아갔는 데 기생은 이 나그네를 한껏 깔보고 대뜸 시험부터 해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선달님, 글 배우셨지요 ?" "못 배웠네.""원, 세상에도. 남자가 글을 모르면 얼마나 답답하시겠소. 그렇지만 손등이 하얀 걸 보니 무식장이 같이는 안 보이는 데 제가 하나 물어볼 테니 대답을 해 봐요. 소나무는 왜 오래 사는지 아세요?" "그럼 학이 잘 우는 까닭은 알아요?" "그것도 모르지." "원 저런! 그럼 길가에 있는 나무가 떡 버티고 선 이치도 모르세요?" "아무 것도 모른다니까." 기생은 나그네가 하나도 제대로 대답하는 것이 없으므로 콧대가 더욱 높아졌다. "그러니까 배워야 한다는 거예요. 제가 일러 드릴 테..

뺨 맞은 황제(皇帝)

♣ 뺨 맞은 황제(皇帝) ♣ 당나라 선종황제(宣宗皇帝)가 젊은시절 한때 출가하여 대중(大中)이란 법명(法名)을 받고 '향엄선사' 제자로 있을 때이다. 그 절에는 수좌(首座)인 '황벽스님'이 매일 정성스레 예불(禮佛)를 드리고 있는데 '대중스님'이 '황벽스님'께 물었다. "부처에게서 찾지 않고 법에서 찾지 않고 예불만 하여 무엇을 찾을 게 있겠소?" "부처에게서 찾지 않고 법에서 찾지 않고 그러면서도 항상 이렇게 지극한 공경(恭敬)과 하심(下心)으로 절을 해야 청정법신을 닮아 간다네" "절은 해서 무엇 하오, 아무것도 찾지 않으면서 절만 하다니 어리석은 짓이 아니오?" 그때 '황벽스님'은 벌떡 일어나 '대중스님'의 따귀를 철썩 때렸다. '대중스님'은 "이런 난폭한 자가!"하고 얼이 빠져 있는데 "이런 경우..

큰댁, 작은댁의 유래

큰댁, 작은댁의 유래 옛날 묘향산일대의 어느 한 지주집에서 머슴을 살던 한 총각이 백년묵은 산삼을 캐보려고 묘향산으로 오르게 되였다. 그 지주집의 늙은 주인이 로환으로 앓아누웠는데 의원들의 진단에 의하면 묘향산에서 백년 자란 산삼을 먹으면 원기가 되살아 나 젊어질것이라고 말하였기때문입니다 머슴총각은 백년묵은 산삼을 찾느라고 묘향산의 깊은 골짜기와 높은 봉우리를 찾아다니며 여러날 헤매였다. 어느날 저녁 산봉우리를 타고 골짜기로 내려오는데 양지바른 곳에 자그마한 집 한채가 보이였습니다. 머슴총각이 이날 밤을 이 집에서 묵어가자고 주인을 찾으니 뜻밖에 달같이 미끈하고 훤한 두 처녀가 그를 맞아주었습니다. 머슴총각이 하루밤 묵어 갈것을 청하니 두 처녀는 기꺼이 허락하였습니다. 두 처녀는 평양태생으로서 어렸을 때..

전세(戰勢) 역전

전세(戰勢) 역전 줄줄이 이어진 동생들 업고 안고, 점심 새참 함지박 머리에 이고 종종걸음으로 밭으로 논으로 발발 쏘다녀도 힘들다는 소리 한마디 하지 않던 열일곱살 순덕이가 마침내 시집을 가게 되었다. 순덕 어미는 그렇게도 딸을 부려 먹은 게 안쓰러운지 딸 머리를 땋아 주며 말했다. “그 집은 식구도 단출하다니 네가 땀 흘릴 일은 별로 없을 거다. 발 뻗고 실컷 잠도 자고.하지만 시집이라고 갔더니 제 어미 말하고는 달랐다. 신랑과 시어머니뿐인 줄 알았는데 시집갔다던 시누이가 딸 하나를 데리고 친정살이를 하고 있었다. 시어미와 시누이는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고 큰 일, 작은 일 닥치는 대로 순덕이를 부려 먹었다“ 아 메밀묵이 먹고 싶구나. 광에 가서 메밀 한됫박만 퍼내 와 절구질해라“ 올케물 한그릇 떠 주..

여승이 되려 하오

여승이 되려 하오 선비 김효성(金孝誠)은 많은 첩을 두었는데 부인은 질투가 매우 심한 편이었다. 하루는 김효성이 외출했다 돌아오니, 부인이 검정 색으로 곱게 물들인 모시를 한 필 준비해 놓고 대청마루 한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아니 여보, 왜 이러고 있소? 무슨 일이 있었소?" 김효성은 의아하게 생각하고 부인 곁으로 가서 그 까닭을 물었다. 이에 부인은 엄숙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여보, 당신이 여러 첩에만 빠져 아내를 전혀 돌아보지 않으니 나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내 지금 머리를 깍고 저 검정 모시로 승복을 지어 입은 다음에 절을 찾아 떠날 테니, 당신은 첩들과 행복하게 잘사시오." 이와 같은 아내의 불평을 들은 김효성은 깜짝 놀라면서, "여보! 나는 본래 여색을 좋아하여, 지금까..

홀아비로 지내는 박진사

금방 탄로 날 일 어느 곳에 일찍이 상처를 하고 홀아비로 지내는 박진사가 있었다. 한번은 박진사가 친구의 생일 잔치에 초대되어 맛 좋은 새우요리를 한 번 먹어 보고는 늘 새우요리, 새우요리하며 입버릇처럼 타령을 하던 차에 생일을 맞이하게 되었다. 마침 한 짓궂은 친구가 커다란 새우 열댓 마리를 선물로 사들고 가서 박진사의 몸종을 불러내어 새우 요리하는 방법을 자세히 가르쳐 주고는 장난삼아 말했다. "이 새우를 삶으면 네년이 진사 어른과 그런 일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당장 알게 된다." "어떻게 그런 것을 알 수 있을까요 ?" 몸종은 깜짝놀라 물어보았다. "즉 그런 사실이 있다면 이 새우는 빨갛게 된단다." 이 말을 듣고 몸종은 부엌 안으로 들어갔다. 친구와 박진사는 이야기꽃을 피우며 이제나저제나 하고 새우..

새 구멍을 뚫으면 그 죄가 훨씬 더 무겁다

새 구멍을 뚫으면 그 죄가 훨씬 더 무겁다 궁중에 궁녀로 있다가 왕궁 밖으로 내보내어진 이른바 '방출궁녀(放出宮女)' 와는 누구도 함께 잠자리를 해서는 아니 되는 율법이 있었다. 이 율법을 '방출궁녀 간통금지율 (放出宮女奸通禁止律)' 이라고 했다. 선조때 도승지 자리에 있던 이항복의 집에 일을 도와주는 겸인(비서) 한 사람이 있었는 데, 이 사람이 선조 임금의 궁녀로 있다가 방출된 한 여인을 사랑하여 간통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방출궁녀 간통금지율에 걸려서 구금되었고, 장차 사형에 처해질 처지에놓이게 되었다. 당시 이항복은 도승지라는 막강한 지위에도 불구하고 중죄를 저지른 이 겸인을 방면시킬 도리가 없었다. 기회를 엿보던 중 때마침 퇴궐한 이항복을 급한 일로 다시 입궐하라는 연락이 오자 '옳지, ..

사슴 같은 큰 눈, 짙은 속눈썹, 심청이는

봉사인 아버지와 댕기를 늘어뜨린 딸이 홍천 고을로 이사왔다. 저잣거리 뒷골목 끄트머리, 조그만 초가삼간에 똬리를 틀었다. 봉사 아버지 성이 손씨인데도 사람들은 심 봉사라 부르고, 이팔청춘 딸도 제 이름이 있건만 사람들은 심청이라 불렀다. 저잣거리에 사람들이 쏘다니는 시간에, 심청이가 명아주 작대기를 잡고 앞장서 걸으면 심 봉사는 작대기 끝을 잡고 뒤따라와 저잣거리 한 모퉁이에 거적때기를 깔고 앉아 사주팔자를 본다. 심 봉사 몰골이야 봉사 점쟁이 모습 그대로 볼품없지만, 그의 딸 심청이는 저잣거리가 훤해지도록 깜짝 놀랄 만한 미인이다. 동백기름도 안 발랐지만 반짝이는 흑단 머리에 사슴 같은 큰 눈, 짙은 속눈썹, 오똑한 콧날에 새빨간 입술은 도톰하게 다물었다. 사람들은 저 아비 씨에서 어떻게 저런 예쁜 딸..

함안댁이 사랑방을

혼례를 올리고 춘하추동을 한바퀴 돌기도 전에 신랑이란 게 기생집을 들락거리더니 동기 머리를 올려주고 첩살림을 차렸다. 양반집으로 시집온 지 한해도 지나지 않아 함안댁은 속이 숯이 됐다. 허구한 날 신랑과 어울려다니는 친구들도 모두가 양반입네 넓은 갓을 쓰고 사랑방에 앉아 시조를 짓고 고담준론을 나누지만 밤만 되면 개차반이 된다. 유 초시는 조부가 당상관을 지낸 명문대갓집 대주로 어릴 적부터 신랑과 서당에서 함께 공부하며 의형제를 맺은 사이다. 신랑과 친한 또 다른 친구는 서당훈장이다. 조선팔도를 유람하던 선비 하나가 이곳 진주에 발길이 닿았다가 하도 명필이라 유림들이 그를 잡아 주저앉혀 훈장이 됐다. 신랑과 유 초시, 훈장은 항상 어울려다니며 낮에는 양반 행세를 하고 밤이면 술독에 빠졌다가 기생 배 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