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고전 211

천재불용(天才不用)

천재불용(天才不用) '재주가 덕(德)을 이겨서는 안된다.'라는 말이다. 요즘 젊은 엄마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식을 천재(天才)로 키우려고 합니다. 하지만, 세상에 나가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천재(天才)가 아니라, 덕(德)이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지도자(指導者)의 위치에서 사회를 이끄는 사람은 천재(天才)가 아니라, 덕(德)이 높은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천재(天才)를 부러워하지만, 천재(天才)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하지만, 덕(德)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머리 좋은 사람으로 키우기 전에 덕(德)을 좋아하고, 덕(德)을 즐겨 베풀 줄 아는 사람으로 키워야 할 것입니다. 공자(孔子)는천재불용(天才不用)이라 하여 덕(德)없이 머리만 좋은 사람은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고 ..

마패

아버지를 일찍 여읜 민국 어머니가 이초시와 재혼하면서 글공부에만 몰두하는데… 민국이 여섯살 때 아버지 박 서방이 이승을 하직했다. 민국은 장날이면 아버지를 따라 장터에 가서 깨엿이며 강정을 사먹던 일이 사무치도록 그리웠다. ​ “아부지 등에 업혀 외갓집에 가고, 목마 타고 원두막에도 갔었지.” ​ 민국이는 날마다 아버지 묘소에 가서 흐느꼈다. 동지섣달 추운 날엔 아버지 무덤을 덮어 주겠다며 이불을 들고 나서다가 어미와 부둥켜안고 눈물바다를 이루기도 했다. 민국 어미는 남편이 죽자 평소 하지 않던 농사일에 매달려 근근이 입에 풀칠할 정도로 살았다. 그러다가 어느 해 봄날, 못자리를 내야 할 그 바쁜 철에 몸이 불덩이가 되면서 덜컥 몸져누웠다. ​ 민국이네는 이듬해 보릿고개에 논을 팔았고, 야금야금 밭도 팔..

명품하인

볼품없지만 학식 많은 맹초시 감기 걸려 서원 강의 걱정이… 언변 좋은 종 허서방이 나서는데... 맹 초시는 참으로 볼품없다. 오척 단신에 눈은 단춧구멍이요, 납작한 콧등엔 살짝곰보 자국까지 찍혔다. 그런 몰골에 비해 머릿속에 들어 있는 학식은 대제학 못지않다. 특히 그 어렵다는 에 관한 한 조선 천지에서 맹 초시를 따를 사람이 없었다. ​ 맹 초시는 팔도강산의 서원이나 서당을 찾아다니며 을 강의해주고 몇푼의 돈을 받거나 쌀 됫박을 받아서 노자로 쓰고 또 다른 곳으로 흘러가는 떠돌이 신세가 몸에 배었다. ​ 맹 초시가 가진 것이라고는 당나귀 한 필과 고삐를 잡는 종, 허 서방이 전부다. 그런데 이 종 녀석이 걸물이다. 맹 초시보다 세살 아래이지만 허우대가 멀쑥하고 언변이 좋다. 수완도 뛰어나 맹 초시 시름..

큰스님의 큰절

계모에게 학대받은 덕수와 덕순 남매 ​지나가던 큰스님이 덕수를 보고 갑자기 큰절을 하는데… 갓 장수 임 서방은 홀아비다. 부자는 아니더라도 보릿고개 걱정 없이 조신한 마누라와 떡두꺼비 같은 아들 하나를 두고 살갑게 살았는데, 그 마누라가 둘째 애를 낳다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 임 서방은 장사도 접은 채 세 살배기 아들을 둘러업고 핏덩어리 둘째 딸아이는 포대기에 싸안고 이 집 저 집, 강 건너 남의 동네까지 다니면서 젖동냥 하는 게 일이 됐다. ​ 삼년을 그렇게 살다가 매파 할미 중매로 과부와 재혼을 하게 됐다. 과부는 딸 셋을 데리고 들어왔다. 식구가 일곱으로 늘어나자 쌀독이 쑥쑥 줄고, 닳아 없어지는 신발도 불감당이라 임 서방은 거의 4년 만에 갓 장수를 다시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 임 서..

큰 창피

가난한 선비 이초시 영리하고 착한 외동딸 시집 보내고… 보고싶은 마음에 사돈댁으로… 가난한 선비 이 초시는 동네 학동들 훈장 노릇에 남의 제사에 지방을 써주고 초상집 비문도 써주며 입에 풀칠을 해왔다. 늘 쪼들리지만 부인과 단 두식구라 먹고사는 데는 큰 걱정 없지만 자나 깨나 마음 쓰이는 게 시집보낸 무남독녀다. ​ 부인이 딸 하나 낳고 단산을 하는 바람에 이 초시는 어린 딸을 한시도 떼놓지 않고 업고 안고 다녔다. 사람들은 딸 때문에 공부에 소홀했다고 입방아를 찧지만 이 초시의 끔찍한 딸 사랑은 말릴 도리가 없었다. 딸아이도 제 어미한테서는 젖만 빨아먹고는 쪼르르 제 아비 품에 안기는 것이었다. ​ 이 초시 딸 설이는 자라면서 인물도 옥골이었지만 머리가 영리하기 짝이 없어 다섯살 때 천자문을 떼고 일곱..

아씨와 도둑

도둑이 들어닥치자 별당 아씨는 방에 있던 패물을 그 앞에 내놓는데… 적막강산에 찬바람만 세차게 부는 깊은 밤, 앙상한 감나무 가지 끝에 걸린 그믐달이 움찔하더니 검은 그림자가 휙 스친다. 검은 옷에 검은 복면을 한 도둑이 대궐 같은 표 대감 집 담 곁의 감나무 가지를 잡고 월담을 한 것이다. ​ 도둑은 잽싼 몸놀림으로 별당 옆 연못에 숨어들었다. 물 빠진 연못 바닥은 흙먼지가 폴폴거리고 연잎도 말라비틀어졌지만 사람 몸을 숨기기엔 부족함이 없다. 도둑이 엎드려 숨은 바로 그 앞에 치마를 걷어 올린 희멀건 엉덩이가 쏴~ 소피를 본다. ​ 바로 그때, 안채 쪽에서 컹컹 삽살개 짖는 소리가 났다. 도둑은 소피를 보는 여인의 뒤로 접근해 시퍼런 칼날을 목에 들이댔다. “하악!” 여인은 너무 놀라 들이쉰 숨을 내뱉..

속 터진 만두

찜솥뚜껑에 손을 녹이던 어린 남매 만두 하나가 없어진 것을 알고 가게주인 순덕, 뒤쫓아 가는데… 성 밖 인왕산 자락엔 세칸 초가들이 다닥다닥 붙어 가난에 찌든 사람들이 목숨을 이어간다. 이 빈촌 어귀엔 길갓집 툇마루 앞에 찜솥을 걸어놓고 만두를 쪄서 파는 조그만 가게가 있다. 쪄낸 만두는 솥뚜껑 위에 얹어둔다. 만두소를 만들고 만두피를 빚고 손님에게 만두를 파는 일을 혼자서 다 하는 만두가게 주인은 순덕 아지매다. ​ 입동이 지나자 날씨가 싸늘해졌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어린 남매가 보따리를 들고 만두가게 앞을 지나다 추위에 곱은 손을 솥뚜껑에 붙여 녹이고 가곤 한다. 어느 날 순덕 아지매가 부엌에서 만두소와 피를 장만해 나왔더니 어린 남매는 떠나고 없고, 얼핏 기억에 솥뚜껑 위의 만두 하나가 없어진 ..

허 생원의 유산 상속

세상 부러울것 없던 허생원… 포목점에 불이나 전재산 잃고 부인까지 저세상으로… 주위 도움으로 다시 가게 열고 자식 열다섯만 되면 시집장가 보내 세월 흘러 백발된 허생원… 칠남매 불러모아 돈 달라 하는데… 허 생원은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포목점은 손님이 끊이질 않고, 아들 다섯 딸 둘 칠남매는 쑥쑥 자라고, 마누라는 아직까지 미색을 잃지 않아 허 생원은 첩살림 한번 차린 적이 없다. ​ 호사다마, 포목점에 불이 나 비단이고 안동포고 싹 다 잿더미가 된 것은 고사하고 옆집 지물포 뒷집 건어물전까지 태웠다. 설상가상, 발 달린 아이들은 가게에 딸린 살림집에서 뛰쳐나왔지만 두살배기 막내를 구하러 뛰어들어간 부인은 물에 적신 치마로 막내를 싸서 밖으로 던지고 자신은 화마에 휩싸였다. ​ 다행히 허 생원은 살..

智計妻羞(지계처수)

智計妻羞(지계처수) 어떤 권문(權門) 재상가(宰相家)의 규수 하나가 있었다. 그는 몹시 총명하고 영리하였으며 시서와 침공(針工)에 통하지 못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도 하나의 결점이 있었다. 성격이 몹시 비좁아서 외통으로 뚫린 그 고집은 만일에 제 뜻대로 아니될 때는 비록 부모의 앞에서라도 화를 발칵 내곤 하였다. 그러니 그 나머지 노복들에겐 더 말할 나위 없었다. 이러한 소문이 전파되자 문안의 수많은 귀공자들이 장가들기를 꺼리는 것이었다. 부모가 그의 혼사가 늦어짐을 걱정하여 그의 잘못된 성격을 책하면 그는 대답하기를『인생이 겨우 100년 이거늘 어찌 부부의 낙을 위해서 자기를 굽히고 기운을 상(傷)하게 할 수 있으리까. 다만 길이 어버이의 슬하에서 모시려 합니다.』 하고 스스로 규중(閨中)에서 ..

절름발이 만들기

배운것도 없고 집안 가난하지만 인물 하나만은 빠지지 않는 덕배 임참봉 열여덟살 무남독녀 도화와 남몰래 가끔 만나는데… 두사람 소문 들은 임참봉… 둘이 만나는 물레방앗간 들이닥쳐… 덕배는 배운 것도 없고 집안은 찢어지게 가난하지만 인물 하나는 조선 천지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다. 열여섯이 되자 제법 남정네 티가 나 키는 훤칠하고 어깨는 떡 벌어지고 목은 울대가 불쑥 솟았다. 나무하고 지게 지는 처지지만 얼굴 허옇고 콧날 오뚝하고 눈썹은 시커먼 미남이다. 휘파람을 불며 냇가를 지날 때면 빨래하던 아낙네들의 자발없는 입놀림이 이어진다. ​ “덕배가 멱 감는 걸 먼발치에서 봤는데 물건이 보통 실한 게 아니여.” ​ “어느 년이 저놈 아래 깔릴지 생각만 해도 사지가 녹아드네.” ​ 아낙들 사이에서 빨래하던 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