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이야기

반쪽의 헌신

춘향골 2024. 7. 26. 12:40





반쪽의 헌신



일요일 오전
거실에서 엉덩이를 들썩이며
걸레질하는 여인이 있다.


무릎 나온 바지에 생얼인 모습이
영락없는 아줌마 품새다.


"여보, 점심 먹고 나서
베란다 청소 좀 같이 하자."


"점심 약속이 있어서 지금 나가봐야 돼."


집에서 탈출하려고
거짓말을 하는데 양푼에 비빈밥을
가득 입에넣고 우물거리다 묻는다.


"언제 들어 올 거야?"

"나가봐야 알지."


그렇게 아내를 뒤로하고
집을 나와서 친구들 불러모아 점심을 먹고
밤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그러는 동안 아내에게서
전화가 여러번 왔으나 받지 않고
배터리를 빼 버렸다.


늦은 밤에 집으로 왔는데
아내가 소파에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잠들었나보다
생각하고 조용히 욕실로 향하는데
힘없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 갔다가 이제 와?"


"어.... 친구들이랑 술 한잔....,
어디 아파?"


"낮에 비빔밥 먹은 게 얹혀서
소화제 좀 사오라고 전화했는데...."


"아..., 배터리가 떨어졌어.
손 이리 내 봐.


이거 왜 이래?
당신이 손 땄어?"

여러 번 땄는지, 아내의
손끝은 상처투성이였다.


"어, 너무 답답해서..."

"이 사람아, 병원을 갔어야지!
왜 이렇게 미련하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여느 때 같으면,
"미련하다는 말이 뭐냐?"며
대들만도 한데, 아내는
그럴 힘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냥 엎드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기만 했다.


나는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져
아내를 업고 병원으로 갔다.


응급처치를 끝내자
아내는 검사비를 아끼려고
'이제 말짱하다' 고 애써 웃어 보이며,


'검사 받이보자' 는
내 권유를 물리치고 병원을 나왔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하는데,


"이번 추석에는 친정부터 가고 싶다."


내가
노발대발 하실 어머니 얘기를 꺼내며
"안 된다"고 했더니 아내가 말했다.


"30년 동안
그 만큼 부려먹었으면 됐잖아.
그럼 당신은 당신집으로 가,
나는 친정으로 갈 테니깐."


그러던 아내가 추석이 되자
친정으로 간다고 혼자 떠나 버렸다.


나 혼자 고향집에 내려가자
세상천지에 이러는 법은 없다며
어머니가 호통을 치셨다.


그렇게 결혼후 처음으로
아내없는 명절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 왔더니
아내는 쇼파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클래식까지 틀어놓고 말이다.


"당신 지금 제 정신이야?"


"여보, ~~
내가 지금 없어져도
애들도 당신도 어머님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겠지.?"


"나 명절 때 친정간 게 아니야.
병원에 입원해서 정밀검사 받았어."


"당신이 전화 한 번만 해봤어도
금방 알 수 있었을 거야.
나는 당신이 전화 해 주길 바랐는 데."


아내의 병은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검사결과를 보는 날
나는 의사의 입을 멍하니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저 의사가 지금
뭐라고 말하고 있는 건가.?"


"위암인데 전이가 돼서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다고?"


"삼 개월 정도밖에 살 수 없다고? "


"이 검사 엉터리 아니야..?"


아내와 병원을 나섰다.
유난히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맑았다.


서로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내를 보며 생각해 잠긴다.


"나 혼자 우리 가정을.?"

"아내가 없는 우리집,?"

"엄마없는 애들은.?"

"걸레질하다 양푼에 밥을
비벼먹는 아내를 볼 수 없다면,?"


"술 좀 그만 마시라고
잔소리해주는
아내가 그리워지면...., ?"


나는 어찌 해야 할까....?


그 얼마 후.
아내는 아이들을 보러 가자고 했다.
아무 말도 말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은 말도 없이 갑자기 찾아온 부모가
반갑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살가워하지도 않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공부에 관해, 건강에 관해 수 없이 해온
말들을 다시 또 하고 있다.


아이들 표정에 짜증이 가득한데도,
아내는 그런 아이들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만 있다.


나는 더 이상 그 모습을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여보, 집에 가다가....
어디 코스모스 많이
피어 있는 데 좀 들렸다 갈까?"


"코스모스?"


"그냥 그러고 싶네.
꽃이 많이 피어 있는 데 가서 꽃도 보고,
당신이랑 손잡고
얘기도 하고 그러고 싶네...."


아내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이런 걸 해보고 싶었나보다.


비싼 걸 먹고,
비싼 걸 입어보는 대신에
그냥 아이들 얼굴을 보고,
꽃이 많이 피어 있는 곳으로
나와 함께 가고 싶고....


"당신이 싫다면 그냥 집으로 가고...."


"아니야. 가자."

코스모스가 들판 가득
피어 있는 곳에 가서 우리는
손을 잡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여보,
나 당신한테 할 말 있어."


"뭔데?"


"우리 적금....,
올 연말에 타는 거 말고, 또 있어.
지난 3년 동안 부어온 거야.
통장은 싱크대 두 번째 서랍 안에 있어."


" 그리고....,
나 생명보험도 들어놓은 게 있거든.
재작년에 친구가 하도 보험 하나
들어 달라고 해서 들었는데,


지금 내가 이렇게 되고 보니,
잘했지 뭐. 그것도 꼭 확인해 보고...."


"당신 정말...., 왜 그래?"


"그리고 부탁 하나만 할게. 적금 타면,
우리 엄마 한테 이백만원 만 드려."


"엄마가 틀니 하셔야 되거든.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
오빠가 능력이 안 되잖아. 부탁해."


난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아내가 당황스러워 할 줄 알면서도,
"엉 엉...." 큰소리로 울고 말았다.


이런 아내를 떠나 보내고
내가 혼자 어떻게 살아갈까....


어느날 저녁,
아내가 침대에서 내 손을 잡는다.
요즘 들어 아내는
내 손을 잡는 걸 좋아한다.


"여보, 30년 전에 당신이 나에게
프러포즈하면서 했던 말 생각나?"


"내가 뭐라 그랬는데?"

"사랑한다 어쩐다 그런 말,
닭살스러워서 질색이라 했잖아?"


"그랬나?"


"그 전에도 그 후로도,
당신이 나보고 사랑한다 그런말
한 적 한 번도 없는데,


그거 알지? 어쩔 땐
그런 소리 듣고 싶기도 하더라."


아내는 금방 잠이 들었다.
그런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도 깜박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커튼 사이 창문으로,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여보,
우리 오늘 장모님 뵈러 갈까?
장모님 틀니....,
연말까지 미룰 거 없이
오늘 가서 해드리자."

"......"

"여보....,
내가 가면 장모님이 우리 사위 왔다고
좋아하실 텐데....
여보, 당신 안 일어나면, 안 간다?"

"......"

"여보?!.... 여보!?...."

좋아하며 일어나야 할 아내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아내를 흔들었다.


이제 아내는 웃지도,
기뻐하지도,
잔소리도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내 위로 무너지며 속삭였다.


"여보, 사랑해.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어젯밤, 이 말을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 가슴 찡한 좋은 글 ♡